정부의 월세정책은 무엇인가
내일신문 2014-12-15 22:26:35
미국에서 집을 구입하지 않고 임대해서 살려면 집주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다. 미국의 임대차 계약의 특징은 전세 계약이 아니라 월세 계약이다. 매달매달 집세를 내는 방식이다. 월세 집에 들어갈 때 필요한 주택비는 다운페이(보증금)와 첫달치 월세다. 1개월 1000달러 월세 집이라면 2000달러를 내면 입주할 수 있다.
보증금은 임차인이 살면서 주택에 손상을 입혔을 때 수리비로 정산하고 남으면 나갈 때 돌려받게 된다. 이런 주택에 살아보면 매우 합리적인 제도란 걸 느끼게 된다. 비싼 집은 비싼 집대로 싼 집은 싼 집대로 이런 원칙 위에서 임대차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적 부담 수준에서 편리하게 집을 얻어 살 수 있다.
미국의 주택임대 제도에서 또 하나 합리적인 점은 월세를 집주인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는 점이다. 주 또는 시의 법령에 의해 같은 임차인에게 매년 집값을 일정 비율 이상 올릴 수 없다. 그 인상률을 대개 5% 이내이다. 그리고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을 집에서 내쫓을 수 없다. 이것들은 '을'의 위치에 있는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조치이다.
두달치 집세만 내면 우선 입주할 수 있고, 입주비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며, 함부로 임차인을 내보낼 수 없는 것은 월세를 얻어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편하고 안정적이다. 1000달러 월세 집에 5년을 계속 산다면 월세가 올라봐야 1300달러 수준이다. 한해 만에 전세가 1억원도 오를 수 있는 한국의 전세 관행 아래서 남의 집에 살다가 미국에 갔을 경우 "미국이 좋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만큼 남의 집을 얻어 사는 한국인들의 중압감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지난 1, 2년 사이에 한국의 주택 임대차 관행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사회적 관습으로 자리잡았던 전세거래가 급속히 줄어들고, 대신 월세 임대차 계약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입자에게 합리적인 미국 임대제도
한국 감정원에 의하면 10월말 기준으로 전국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41.2%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월세 거래를 감안하면 월세가 전세를 이미 추월했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월세가 급속히 확산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집값이 오를 대로 올라서 매매차익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둘째 저금리 시대에 전세를 받아도 집 주인이 그 돈을 굴려 원하는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월세를 꼬박꼬박 받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미국처럼 제도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이 합리적으로 마련된 규칙 안에서 계약을 할 수 있다면 긍정적이라 할만하다. 집값이 턱없이 비싸기 때문에 젊은 봉급생활자들은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주택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미국처럼 세입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서 월세를 내더라도 안정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월세의 확산은 실제 월세 주택 소비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세금의 이자보다 몇 배 비싼 월세를 집주인이 받고 있어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좋게 얘기하면 시장이 결정하는 월세 가격이지만, 실은 정글 같은 월세 시장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고가의 월세 집에 사는 부유층도 더러 있다. 그러나 월세를 사는 사람은 대부분 서민들이다. 이들은 임대인 또는 시장의 횡포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의식주(衣食住)는 인간 생활의 기본이다. 우선 먹을 음식이 있어야 하고 입을 옷이 있어야 하지만, 밤이 되면 들어가 잘 집이 있어야 인간의 기본생활이 충족된다.
평균 국민소득(GDP) 2만달러를 넘기면서 의식(衣食)의 문제는 나름대로 해결됐다. 현재 복지정책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호의호식은 못해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했다.
주택, 이용의 개념으로 접근할 기회
그러나 서민의 주택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주택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웬만한 서민은 자기집 장만하기가 평생 힘들어졌고, 전세값마저 천정부지로 뛰어 탈출구가 없어졌다. 전세시대에서 월세시대로 전환되는 것은 오히려 주택정책의 합리적 해결을 모색할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집을 소유와 투자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이용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나 정부는 주택을 경기활성화의 방향으로만 생각하지 서민 주거안정의 방향에서 바라보는 기색은 전혀 없다. 정부·공무원이나 여야 정치권이나 모두 집주인의 대변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앞에 설명한 미국의 임대차 계약관행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세입자들은 그야말로 정부에 의해 정글에 버려진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