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보다 배가 빠르다
제주도 관련 2014-10-01 13:38:28
10년 전 유한킴벌리의 영업본부장으로 잘 나가던 이순섭씨는 돌연 사표를 던진 후 바로 제주도로 내려가 물류회사를 차리고 사장이 되었다. 물류회사 차리는 게 꿈이었던 그가 제주도에 터를 잡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제주도가 성장할 위치적 잠재력이 있다고 보았고, 둘째 이런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물류산업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을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했다.
"비행기보다 배가 더 빠르다." 이순섭 사장이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말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입만 열면 비행기 타령을 합니다. 공항과 항공운송의 포화상태를 노상 걱정하지만 해운과 항만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해운이 제주도 발전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긍이 간다. 제주행 비행기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운항이 정지된다. 그러나 배는 24시간 인천에서, 목포에서, 완도에서, 부산에서 제주를 향해 항해할 수 있다. 해운물류비는 비행기에 비해 엄청 헐하다. 육상운송과 해상운송의 연결시스템만 잘 활용하면 개별사업자가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는 이 틈새를 이용하여 성공했다고 한다. 이씨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육상운송과 해상교통의 연결 시스템을 일관체계로 바꾼다면 제주도를 해상운송의 거점으로 발전시켜서 한국의 물류 영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현재 대변화의 전환점에 서 있다. 내외국인 관광객이 작년 1000만명을 넘었고 증가폭은 가파르다. 하루에 관광객 3만명이 방문한다. 이에 따른 물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주 인구도 급속히 늘어 62만명에 육박했다.
특히 중국인의 왕래는 놀랄 만하다. 하루 5000명씩 들어온다. 중국인 토지 매입으로 땅값이 폭등하고 공항은 포화상태다. 토지의 개인소유를 불허하는 중국인데, 중국인들의 제주도 토지 매입 러시 현상은 제주도와 한국에 과연 좋은 것인지 염려스럽다. 중국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중국인 러시 추세가 좀처럼 쉽게 시들해질 것 같지 않다.
철도와 배 연결하는 시스템 구축 절실
어찌 됐든 들어오는 관광객을 원활하게 처리해야 하고, 필요한 물류는 순조롭게 흘러야 한다. 그게 국가나 제주도를 위해 도움이 된다. 육로가 없는 제주도는 비행기와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배는 화물뿐 아니라 관광객도 대량으로 실어나를 수 있다. 그렇지만 연안 해운의 핵심인 제주와 육지를 잇는 뱃길에 정부는 별로 전략적 관심이 없어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해상운송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를 말해준다.
과거와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제주도 관광은 한국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다. 일례로 크루즈 관광객의 폭증을 들 수 있다. 2012년 14만명이었던 크루즈 관광객이 작년 38만명, 올해는 8월 말까지 40만명을 돌파했다. 제주항에 대형 크루즈선박이 떠 있는 것이 일상 풍경이 되었다. 제주도를 기점으로 한 연안 해운을 도서 주민의 편의를 위한 지원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한국 해운의 획기적 발전과 항공 적체의 대안으로서 새롭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전략은 육상운송과 해상운송이 일관시스템으로 흐르게 하는 사회간접자본(SOC)의 개혁과 확충이다. 특히 철도와 배를 직접 연결하는 교통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철도는 빠르고 쾌적하다. 배는 화물과 사람을 대량으로 태울 수 있으며, 낭만이 있다.
KTX와 고속 카페리 또는 로로선(RORO)이 융합한다면 서울의 관광객이 KTX의 편의성과 선박의 낭만을 즐기며 제주도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항공을 통해 제주로 들어온 외국 관광객들도 배와 연결된 KTX로 전국 관광지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KTX노선과 제주를 가장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항만 선정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해운강국으로의 일대전환 필요
저탄소 친환경은 21세기 운송의 필수조건이다. 철도와 배는 도로나 항공에 비해 친환경적이다. 그래서 고속도로에 화물차가 달리는 대신 기차로 화물을 이동하는 모달쉬프트(Modal Shift)가 소망스러운 추세다. 최근 전남-제주를 잇는 해저터널 KTX 얘기도 나오지만 아이디어 단계다. 해저터널 80킬로미터는 돈, 기간, 환경파괴를 고려해야 한다. 제주도는 친환경 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제주도는 세월호 참사 이후 5개월째 물류 적체로 신음하고 있다. 세월호와 오하마나호 두척의 인천-제주 연결이 중단되면서 제주로 드나드는 화물 운송량이 9%나 줄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여파로 배를 이용하는 관광객도 대폭 줄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연안 해운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말해주는 한편, 조선강국 한국이 해운강국으로의 일대 전환이 필요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