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과 원희룡의 '협치' 실험
내일신문
2014-06-20 16:34:47
6.4 지방선거 이후 일반인의 귀에 생경한 ‘협치’(協治)란 말이 지방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협치'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두 사람이 권력의 독점 기간이 길었던 새누리당 도지사 당선자들이라는 이유에서 신선함은 더욱 커 보인다.
남경필 원희룡 두 당선인이 주장하는 협치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남 당선인은 경기도정 운영에서 독일식 연정을 적용하겠다고 한다. 도시사가 정치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한 사람의 부지사 자리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몫으로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제의에 야당이 자리에 앞서 정책연합을 주장하자 남 당선인은 정책연대가 가능하다면 인사 권한을 야당에 더 할애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경기도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남 당선인의 제안에 긍정적이다. 여야는 연정을 협의하기 위해 국회의원 도의회의원 등이 참여하는 여야 동수의 협상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남 당선인이 협치를 제안한 데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 경기도의회의 다수당은 새정치국민엽합이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남 당선인이 경기도정을 원활하게 이끌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당선인의 연정 제의는 흥미로운 정치실험이다. 왜냐하면 경기도 의회의 여소야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처럼 그냥 갈 수 있는 길인데도 남 당선인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경기도는 서울보다도 인구가 많고 전국 각지에서 유입된 인구 구조를 가진 지자체다. 경기도가 독일식 연정에 합의한다면 신선한 정치적 바람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크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이 말하는 '협치'는 정치적으로 명료하지 않다. 원 당선인이 선거운동기간 동안 자주 거론했던 협치는 여야 협력 개념보다는 지역공동체 또는 NGO와 지자체간의 협치를 통한 지역 현안문제 해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원 당선인은 선거 직후 패배자인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새도정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지방정치에서 아직까지 없던 일이다. 경기도에서 여야가 협상단을 만들고 접근하는 것과는 달리, 신구범씨와 그를 후보로 옹립한 새정치민주연합은 불협화음이 일고 있어 제주도가 경기도에 이어 여야 협치의 실험장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원희룡 당선인의 정치적 행보가 의미 있는 것은 선거 때마다 반목과 파당적 행태를 보여 온 제주도 지방정치의 적폐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원 당선인의 협치가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원 당선자는 진보 교육감과의 협력도 문제없다고 공언할 정도로 정파를 뛰어넘는 협치 가능성을 비치고 있다.
그런데 남경필 당선인의 구상대로 독일식 연정이 과연 한국의 지방자치제에 잘 적용될지 관심거리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방자치단체는 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권력의 파이가 너무 적다. 중앙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지방정부에는 극히 제한적인 힘만 부여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정책연합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끔 장관직을 나눠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방정부는 정책 집행의 핵심을 이루는 국장급 공직자들이 거의 모두 직업 공무원으로 채워진다. 정책 공유를 위해 나눠가질 자리가 거의 없다. 이런 제한 속에서 연정을 할 수 있는 기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남경필 정치 실험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기도의 연정이나 제주도의 여야 협치가 어떤 형태로든 싹을 틔운다면, 그것은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현재의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
한편 재집권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도 통합을 얘기하며 박근혜 정부의 국정핵심 주제인 창조경제를 말하고 있다. 과거 반대당의 정책 용어는 무조건 배척하던 것과는 매우 달라진 변화다. 지방정부에서 상대 당에게 보직을 맡기거나 정책을 차용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행보는 과거엔 없던 일이다.
남경필 원희룡 당선자가 모두 여권의 대권후보군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이 제안한 여야협치를 정치적 쇼라고 폄하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속성이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점을 들어 한국적 정치상황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치의 협치 실험에 기대를 하고 싶은 것은 중앙의 정치가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국민을 참을 수 없는 실망 속으로 밀어 넣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비록 지방에서일지언정 정파의 이익을 벗어나 주민이나 국민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여야의 모습을 갈구 하고 있다.
여야 협치는 절제와 균형이 극도로 요구된다.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많은 몫을 주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고, 연정 대상인 야당에서도 투표에서 표출된 주민의 의 의사를 존중하는 선을 넘어 탐욕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경기도와 제주도가 협치에 어느 정도 성공하면 중앙정치도 그 긍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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