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의 스마트에너지
내일신문
2014-06-02 23:41:41
유월 초인데 에어컨을 틀고 싶을 정도로 더위가 위협적이다. 올 여름도 전력수급 문제로 비상이 걸릴 것만 같다. 원자력 발전이 하나만 고장 나도 전력 당국은 안절부절못하는 게 한국의 전력수급 실정이다. 올 여름도 얼마나 자주 ‘블랙아웃’이란 말을 들어야 할까. 여름철 전력피크 타임을 놓고 벌이는 이런 소동을 좀 완화할 방법은 없을까.
‘황의 법칙’은 2000년 대 초반 삼성전자의 황창규 기술총괄 사장이 제시한 반도체 기술 이론이다. 스마트폰 출현 이전 삼성전자의 최고 먹거리는 바로 메모리 반도체였고, 그 기반은 황의 법칙이었다. 삼성전자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며 초일류 기업으로 폭발 성장할 즈음, 황창규 사장은 삼성에서 물러났다. 방만 경영과 관료적 조직문화로 시름시름 앓던 KT(한국통신)는 그에게 구원투수가 되어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황창규씨는 작년 연말 KT 회장실로 들어갔다.
황 회장은 오랜 침묵 끝에 지난달 20일 KT의 미래 전략, 즉 융합의 기가인터넷 (Giga-Internet)시대를 선언했다. KT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황의 첫 작품이 5대 미래 융합 서비스다. 스마트 에너지, 통합 보안, 차세대 미디어, 헬스케어, 지능형 교통관제 등 5대 분야에서 IT회사로서의 KT의 강점을 펼쳐 보이겠다는 포부다. 그가 말하는 맥락을 짚어보면 국가로서 한국이 잘할 수 있고, 회사로서 KT가 잘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고, CEO로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5대 분야라는 얘기다.
황 회장은 5개 사업 분야 중 스마트 에너지(Smart Energy)를 제일 앞에 내놓았다. KT가 가장 먼저 손대고 싶거나, 기획과 실행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스마트 에너지’는 황 회장의 언어이지만 우리가 근래 자주 사용하는 ‘스마트 그리드’(Smart-Grid)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명칭이 무엇이든 ‘스마트 그리드’야말로 IT강국이자 에너지수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꼭 필요하고 서둘러서 도전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전력 수급체계는 한국전력이 독점하여 전력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값싸고 품질이 균일하고 중단 없이 공급되기만 하면 정부는 일정한 이윤을 보장해주고, 소비자는 전기료만 내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전력공급망은 정교하게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경제가 성장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무작정 확대된 체제다. 철저히 공급위주의 낭비적 전력공급체계다.
스마트 그리드, 즉 지능형 전력망은 21세기 들어 인터넷을 비롯하여 정보통신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대두된 개념이다. 과거 전력은 발전(發電)-송전-배전-소비자의 단방향이었으나 이 전력망에 정보통신(IT)기술을 융합하면 발전소, 송배전 시설 그리고 소비자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되어 양방향 소통이 이루어지고 따라서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할 수 있다.
스마트 그리드가 작동하면 전력공급자는 전력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공급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소비자도 실시간 제공되는 정보를 통해 값싼 전기 사용 시간대를 활용할 수 있다. 풍력, 태양광등 재생 에너지 생산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전기차 또는 수소차가 상용화될 날도 멀지 않았다. 스마트 그리드는 가정이 전기를 소비할 뿐 아니라 전기차 등에 저장된 전력을 전기값이 높은 시간대에 손쉽게 판매할 수 있다. 여름철 냉방전력과 겨울철 난방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력피크타임 관리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전력피크에 맞추다보니 연간 대부분 돌아가지 않는 발전시설을 갖춰야 하는 비효율성이 높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스마트 그리드이다.
사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민간투자를 포함해서 수천 억 원의 예산을 들여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를 제주도에 만들었다. 한전은 물론 KT도 참여했던 프로젝트다. 과연 그 실증단지를 활용하여 정보와 지식을 쌓고 활발한 실험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실증단지에 관여했던 사람들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 들어 정부의 관심은 시들해진 것 같다고 한다.
황창규 KT 회장이 스마트 에너지 분야에 뛰어들겠다는 신호는 고무적인 소식이다. 그러나 스마트그리드는 KT 혼자 출 수 있는 춤이 아니다. 전력회사와 호흡과 궁합이 맞아야 한다. KT와 한전이 공식적으로 협력을 다짐했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그러나 지극히 관료적인 한전은 그냥 움직이지 않는다. 에너지 문제를 총괄하는 산업자원부의 눈치를 봐야 하고, 산업자원부는 청와대의 산업정책 기조에 거슬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원전 한 두 기 건설은 포기할 수 있다는 각오로 지속적인 투자를 한다면 스마트그리드 구축이라는 창조적 SOC 초석을 자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