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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본

구상낭 2022. 11. 7. 12:31

2010-06-28 10:38:48

 

일본의 동북 지방에 위치한 아키타 현과 이와테 현은 산이 깊습니다. 꼭대기까지 숲이 우거진 일본 특유의 산세, 해발 1,500미터만 되어도 하얗게 남아있는 잔설, 깊은 계곡을 폭포수처럼 흘러가는 강 등 도쿄 같은 대도시 지역과는 다른 일본의 풍광을 만나게 됩니다.

 

일본은 산과 강의 나라입니다. 호가이도에서 오키나와에 이르는 장장 3,000킬로미터의 길고 긴 국토 어디를 가도 푸른 숲이 우거진 산과 수량이 풍부한 강을 보게 됩니다. 남한의 거의 4배에 이르는 국토로 볼 때 땅덩이가 큰 나라이고, 세계 제2경제 대국으로서 역시 우리의 4배가 넘는 국민소득(GDP)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 경제규모에 비해 ‘작은 규모로 적게 쓰며 산다’는 겁니다. 사무실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타면 답답할 정도로 비좁습니다. 일반 호텔의 화장실을 보면 작은 욕조와 변기만으로 꽉 차서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우리와 비교할 때 매우 작습니다. 공공시설은 그렇지 않은 것도 같으나 사적인 시설은 모두가 이렇게 작고 절약하게끔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이런 소규모 생활방식이 세월이 흐를수록 눈에 띄게 느껴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경제생활이 풍요로워진데 기인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해봅니다. 옛날 우리도 아파트가 아니라 비좁은 단독주택에서 몇 세대가 모여 살 때는 일본의 이런 생활방식에 그리 답답함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소득이 1만 달러, 2만 달러로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는 ‘넓고 안락한 생활 구조’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갈 때마다 그들의 생활 방식이 답답하고 비좁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요.

 

아키타 현의 깊은 산중에는 우리나라 연속극 ‘아이리스’을 촬영한 다자와 호수가 있습니다. 둘레가 20킬로미터이고 수심이 423미터나 되는 아름다운 화산 호수입니다. 인근에 온천이 많아 휴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고, 어디를 가나 한글 안내 책자가 즐비한 것을 보면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다녀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텔의 객실에 들어가니 일본식 다다미방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조그만 냉장고가 있어서 문을 열려고 하자 손잡이가 잠겨있는 것이었습니다. 종업원에게 항의했더니 전기코드를 연결하면 냉장고 문이 저절로 열린다는 거였습니다. 손님이 비어 있는 동안은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이런 냉장고를 비치한다는 게 안내원들의 설명입니다. 전기를 쓰지 않을 때 전기코드를 빼어 놓는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수없이 방송을 통해 계몽하지만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시골 포장도로는 왜 그리 도로 폭이 좁아 보이는지 답답할 정도입니다. 2차선이 대부분이지만 외줄 도로도 많습니다. 일본 동북지역에는 나무가 많아 더욱 도로 폭이 좁아 보입니다. 게다가 버스는 물론 승용차도 속도를 내지 않고 규정 속도대로 달립니다. 한국에서 넓은 도로에 익숙해온 사람들에게 일본 시골길은 참을 수 없는 느림의 길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으로 얼마나 좋은 길을 만들어 쌩쌩 달리고 있는지를 일본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이 10년을 잃어버린 동안 우리나라가 도로 같은 공공시설과 편의시설을 고급스럽게 바꿔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은 일본이 경제 침체기라서 도로 폭을 늘리지 않았고, 작은 자동차를 쓰고 있고, 비어있는 호텔 냉장고를 잠가놓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 특유의 생활방식이기도 하지만, 거기다 교토의정서 채택(1997년) 이후 에너지 효율 및 절약에 대한 일본인들의 합의된 정서가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들은 경제적 침체기를 맞아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염두에 두고 노력해 왔다는 것입니다.

 

집이 크고 도로가 넓으면 에너지는 많이 들게 마련입니다. 일본은 원래 도로도 쓸데없이 넓게 뽑지 않았고, 집도 옛날식 단독주택으로 짓고 현대적 시설을 가미하여 삽니다. 아키타 현의 시골에서 우리나라 시골에서처럼 하늘높이 솟아오르는 아파트를 볼 수 없습니다.

 

일본은 에너지효율성이 세계 최고에 이른 나라입니다. 거기다 절약합니다. 그래서 사는 게 왜적(倭的)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거의 미국 수준으로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이 풍요로움은 화석연료의 덕택입니다. 석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에너지 전문가들은 피크오일(Peak Oil)을 심각하게 제기합니다. 인류가 쓸 석유 매장량이 40년 어치 남아 있지만 생산이 더 늘지 않을 때 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2008년부터 피크오일이 시작됐다는 설에서부터 2018년이라는 설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냥 어려우면 참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백년간에 걸쳐 발전시켜온 인류 문명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말합니다. 원자력발전소를 몇 기 더 지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소나 연료전지 등 첨단 기술로 만든 새 에너지가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다가오는 위기의 속도에 비해 그리 고속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나이브하게 최근 반도체 등 여러 분야의 괄목할 업적을 토대로  과학기술이 만능열쇠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뚝딱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개발되는 것으로 말입니다.

 

석유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 아닙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그걸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의 생리상 그 위험을 강조하며 미리 고통을 요구하지는 못합니다. 석유 값이 배럴당 200달러, 300달러, 400달러로 오를 때, 우리가 지난 한세대 도안 이룩해 놓은 자동차 문화나 아파트 문화 또는 대도시 문화는 유지가 될까요. 분당과 일산 같은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는 교외 문화가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피크오일의 위기에 잘 적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쫀쫀하게 보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