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중국의 공기, 한국의 공기

구상낭 2022. 12. 7. 12:29

내일신문 2014-03-04 13:09:13

 

2월의 기억은 미세먼지투성이였다. 짙은 스모그와 마스크를 쓴 시민들의 이미지가 뇌리에 잔영으로 남아 있다. 오늘은 공기가 깨끗하지만 당장 며칠 후에 지독한 스모그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동네 마트에서 황사마스크를 샀다.

인간은 물만 있으면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도 보름 이상 연명할 수 있지만,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잠시도 견딜 수 없다. 사람이 숨을 참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탈리아 사람이 보유한 최고 기록은 7분47초라고 한다. 만약 세계 70억 인구를 상대로 8분 동안 강제로 숨을 못 쉬게 한다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물질이 공기다. 성인이 조용히 앉은 상태에서 한 번 들이 마시는 공기의 양은 0.5리터 정도라고 한다. 연구자들이 호흡 회수와 흡입 공기의 양을 측정해서 내놓은 값을 보면 사람은 하루 1만~2만 리터를 소비한다.

사람이 하루 평균 섭취하는 수분이 2~3리터인 점을 생각하면, 호흡하는 데 필요한 공기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직까지 마시는 물에 기울이는 관심에 비해 공기를 소홀히 취급한다. 물은 선택해서 마실 수 있지만 공기는 선택할 수 없다. 서울에서 평창 생수를 매일 마실 수 있지만 지리산 공기를 마실 수는 없다.

선택해서 마실 수 없는 한국의 공기, 그 공기의 질(質)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 바로 허용치의 몇 배가 넘는 미세먼지가 하루 1만~2만 리터의 공기와 함께 폐로 들어가 쌓이는 것을 상상해 보자.

‘미세먼지’란 알갱이의 직경이 1000분의 10mm인 먼지를 말하며, 미세먼지를 뜻하는 영어 Particle Matter의 약자를 따서 ‘PM-10’이라고 표기한다. ‘초미세먼지’는 알갱이의 지름이 1000분의 2.5mm인 먼지로 ‘PM-2.5'라고 표기한다. 미세먼지는 콧구멍을 통해 잘 걸러지지 않은 채 몸속에 흡수되면 폐나 혈관에 부착되어 호흡기와 심혈관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초미세먼지는 더욱 걸러지지 않고 흡수되기 때문에 건강에 더 해롭다.

미세먼지는 황사나 화산 등 자연현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심각한 환경문제로 등장한 것은 산업발전과 도시화 탓이다. 특히 석탄과 석유 등 화석 에너지는 미세먼지의 공급원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에 자동차 2천만 대를 보유하고 국토가 비좁기 때문에 미세먼지 발생이 원래 높다.

그러나 지난 겨울 숨쉬기가 괴로울 정도로 한국 하늘을 뒤덮은 스모그 현상은 중국 탓이 훨씬 큰 것 같다. 한국 내 산업시설이나 도시의 영향을 전혀 받을 수 없는 백령도에서 기준치 몇 배가 넘는 미세먼지가 발생한 것은 중국 영향을 빼고는 설명할 근거가 없다.

중국의 산업화로 20년 전부터 중금속이 함유된 황사가 한국의 봄 하늘을 덮고 산성비를 뿌리더니, 최근에는 자동차와 난방을 위한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하면서 미세먼지 폭탄이 편서풍을 타고 한국 하늘을 공격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일은 중국 발 미세먼지가 에너지 소비 증가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엔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근래 작성한 시나리오에 의하면 중국의 미세먼지는 2022년까지 증가하고, 최악의 경우 2050년까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물론 미세먼지의 1차 피해자는 중국인들이지만, 2차 피해자는 한국인이 될 것은 자명하다.

이대로 간다면 양말을 신는 것처럼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한국인의 일상 모습으로 변할지 모른다. 이것도 기이한 일이 되겠지만 미세먼지 속에 갇혀 살면서 겪어야 할 건강 및 환경 폐해가 어떤 형태, 어떤 규모로 올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세먼지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것은 일차적으로 개인이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을 개인의 몫으로 치부해 버릴 수 없어 보인다.

우선, 한국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보지 말고 긴 안목을 갖고 정책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것은 에너지 정책 및 이산화탄소 저감 정책과도 맥락을 같이 해야 할 일이다. 한국 스스로 미세먼지를 줄이는 선진적 노력을 하지 않고 이웃 중국을 향해 손가락질 해보아야 효력이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미세먼지 이동과 관련하여 현명한 외교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의 스모그 오염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한일 양국의 지적에 대해중국 당국은 “확증이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합리적으로 책임을 입증할 방도가 필요하다. 미국과 캐나다의 산성비 분쟁 등 환경문제를 놓고 일어났던 국제분쟁 사례가 많다. 피해 사례를 합리적으로 탐사하여 정부의 실무자급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 아무리 중국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세먼지는 중국인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환경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