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박원순
내일신문 2014-02-03 21:41:26
지방 선거가 120일 앞으로 다가왔고 선거를 그리워하던 정치권이 제철 만난 듯이 그 채비에 부산하다. 언론도 여론조사 결과와 예상 표를 내놓으며 법석을 떨고 있다. 지방 선거는 말 그대로 주민의 생활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해줄 공직자를 뽑는 행사이니 그 지역 주민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를 그렇게 좁혀서 봐주지 않는다. 멀리는 박근혜 정권 이후의 판도까지 예측하는 시험대로 본다.
그런 맥락에서 언론의 초점이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 시장 두 사람에게 쏟아진다. 박원순 시장은 민주당 후보로 재선에 도전하고, 안철수 의원은 신당을 이번 지방선거에 맞춰 곧 데뷔시킨다. 3년 전 둘이 얼싸안고 양보로써 이뤄진 ‘박원순 서울시장’체제이지만 이제 둘의 관계는 아주 묘한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들이 은근히 갈등하고 싸우길 기다리는 언론도 있고 정파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눈앞의 정략적 갈등을 넘어서 두 사람에게 보내는 국민적 기대도 높다. 그 이유는 지금 한국 정치가 국민의 욕구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여야의 극한적 대결로 국력을 낭비하고 있기에 국민은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어 한다.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의원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잠재적 대안 군(群)에 들어간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여론조사에서 전국 지자체장 중 상위의 직무평가 점수를 받았고, 지지율도 매우 높게 나타났다. 민주당이 여의도 정치에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퇴영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박 시장의 인기는 소속 당을 넘어서 독자적인 이미지 구축에 성공하는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박 시장의 스타일은 그의 선임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어떤 시장으로 남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무 일도 안 한 시장으로 남고 싶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정적들은 비난하기 시작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의 말은 반어적이다. 크게 한 건 하는 과시적, 예산 낭비적 토목 프로젝트를 자제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하드웨어의 컨텐츠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컨텐츠로 서울 시정의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박 시장의 스타일이 질풍노도와 같은 6월 지방선거에서 먹혀들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서울 시장 선거는 차근차근 쌓은 공적으로만 판가름 날 수 없는 요인을 안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적 제스처를 배제한 행정가적인 그의 행보가 다수 시민들의 코드에서 빗나가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번 지방 선거의 또 하나 관심 인물인 안철수 의원은 시장이나 시의원에 나올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 지방 선거에서 그는 무대의 중심에 올라 있다. 지방선거에서 그가 힘을 얻느냐 못 얻느냐에 따라 정치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기존 여야 정치권이 지역과 이념을 볼모로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고 있다. 사회정의를 세우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할 비전과 행동이 기존의 여당이나 야당에게서 찾을 수 없다고 사람들은 느낀다. 그런 일을 할 중심인물이 여당이나 야당에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20~30대의 젊은층은 3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서, 또 2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보냈던 ‘안철수 정치에 대한 지지’를 아직 철회하지 않고 있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안철수가 충분히 검증받지 않은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비친다. 그러나 젊은층의 시각은 다르다. 도시화와 탈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안철수 의원의 메시지와 스타일은 그 어떤 정치인보다 젊은이들의 코드에 공명하고 있어 보인다.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의원은 기존 정치권의 시각에서 보면 아웃사이더들이다. 두 사람은 걸어온 길이 다르지만 우리 사회가 지금 야당이나 여당이 생각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사람이 기존 정치인의 관행과는 다른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박 시장은 참여연대를 기반으로 한 운동권 출신이다. 누가 보아도 진보 성향이다. 당을 선택한다면 민주당이 이념적으로 맞다. 그러나 그는 시장이 되기 전에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기존 운동권 궤적을 탈선해서 대안적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기존의 운동권과 같은 방식으로는 변화하는 사회에 희망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과정에서 벤처기업가에서 ‘사회개혁 전도사’로 변신한 안철수와 공감하고 교류하게 되었다. 안철수 의원은 의사, 벤처기업가, 정치인의 궤적을 밟았다. 그의 생각은 정치스펙트럼으로 볼 때 중도 우파쯤 될 것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합리성과 상식을 중시한다. 박원순 시장이나 안철수 의원이나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아웃사이더들인지 모른다. 국민이나 시민들이 그렇게 여겼기에 지금 시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아웃사이더 기질은 여야 모두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선거에서 둘 사이에 긴장관계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 무대로 뛰어든 이들이 측근들에 휩싸여 암투를 벌일지 초심을 유지하면서 상생의 정치를 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둘이 경쟁하든 협력하든 합리성에 바탕을 둔 품격의 정치인으로 행동했으면 좋겠다. 싸움을 부추기는 기존 정치문화의 갈등 풍토를 극복하는 지혜를 보여줬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