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에서 생긴 일
자유칼럼 2013-11-18 14:35:31
얼마 전 서울 마포 뒷골목에서 지인(知人)들끼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2차가 이어졌습니다. 모처럼 만났으니 호프나 한잔하며 얘기를 나누자고 해서 찾아간 곳이 ‘골뱅이집’이었습니다.
늦가을 저녁의 싸늘한 바깥 공기 탓인지 밤 9시가 지났건만 골뱅이집에는 테이블 곳곳에 생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었습니다. 술집 분위기란 게 좀 웅성거리거나 떠들썩하기 마련이고, 또 그런 분위기에 사람들이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맥주와 골뱅이 안주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만큼 주변 테이블이 시끄럽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의 테이블을 놓고 통로 건너편 테이블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했습니다. 젊은 부부들 네댓 쌍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유치원 다닐 정도의 아이들 네댓 명이 서로 떠들어 대는 것이 가관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의자 위에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뛰어내리며 고함을 내질렀고,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자기네 대화가 방해 받자 한 옥타브를 높여 소리를 크게 지르는 바람에 홀 안은 난장판 같았습니다.
지인 중 여성 한 분이 “이건 아니야. 한마디 해야겠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젊은 엄마한테로 다가갔습니다. 나머지 일행은 “항의하다가 싸움 벌어지겠다.”고 걱정하면서 사태를 주시했습니다.
항의는 점잖았습니다. “너무 목소리가 커서 옆에서 얘기를 나눌 수 없으니 좀 소리를 낮춰주십시오.”
“아이들이야 그렇게 떠드는 게 아닙니까?” 젊은 엄마가 되레 항의조로 나왔습니다.
“그게 아니라 엄마의 목소리가 더 커서요.”
그 때 아빠인가 싶은 젊은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항의했습니다. “애들이 그런 거지, 얼마나 떠든다고 그러는 겁니까?”
지인은 조용히 그러나 힐난하듯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보다 엄마 목소리가 너무 커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남자는 씩씩거리면서도 더 이상 점잖게 말하는 여성을 상대로 항의하지는 못했습니다. 떠드는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지적에 편들 의지가 꺾인 모양입니다.
약간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애들이 난리를 피우며 고함치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젊은 부부들의 목소리도 홀이 떠나갈 듯이 커졌습니다. 우리는 고개만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바로 우리 옆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그룹의 중년 남자가 “애들 좀 떠들지 못하게 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아빠들이 집단으로 일어서서 애들이 좀 노는 데 무엇이 잘못됐냐며 대드는 것이었습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항의하는 그룹에서 머리가 허연 사람이 일어서서 “됐으니 이제 그만합시다.”고 진정시키려 하자 젊은이들은 이번엔 이 어른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냈습니다. 다행히 그 이상 다툼은 악화되지는 않았고, 잠시 후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사라진 후 우리들은 젊은 부부들의 자녀교육에 대해 한바탕 토론을 벌였습니다만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깊은 밤에 철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맥주를 마시러 나온 이 부부들의 자녀 교육관도 이해할 수 없었고,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맘대로 뛰어놀게 내버려두는 그들의 태도도 못마땅했고, 그런 소란스러움에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덤벼드는 젊은 엄마 아빠들의 행태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날 골뱅이 집의 소란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라 자위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분위기로 봐서는 서울의 골목길은 물론 지방 어느 도시에서건 심심찮게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도 절제와 남을 배려하는 사회분위기가 점차 사그라지는 판에, 술집에 애들까지 데리고 오는 부부들이 남을 배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보다 그 젊은 부부들이 사는 세계와 기성세대가 사는 세계의 가치 기준이 전혀 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들은 모처럼 주말을 맞아 친구 부부들과 어린아이들을 동반하고 호프집에 가는 것이 교육적으로 해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디서건 신나게 자유롭게 뛰어 노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술집에서 자유롭게 떠들며 노는 젊은이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케케묵은 투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머릿속이 참 혼란스럽습니다. 우리 주변이 무서운 세상으로 변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